HOME > CLC 인문학 > C 문화C 문화
흙피리와 홍산문화
      오카리나는 흙을 빚어 만든 악기이다. 1853년 이태리 북부의 작은 마을인 부드리오(Budrio)에서 17세의 창의적 소년이 었던 쥬세페 도나티(Giuseppe Donati)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악기가 만들어 졌다. 그렇다면 흙을 빚어 만든 악기의 효시는 어디에 있으며 어느 나라와 연관되어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흙사랑문화(CLC)예술 협동조합에서는 2012년 6월 중국 요녕성 조양시 덕보박물관에 소장된 ‘홍산문화’시대의 물고기 형상의 흙피리를 눈으로 보았으며 뿐만 아니라 소리를 직접 불어보기까지 했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한.중 역사학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 ‘홍산문화’이다.

      1980년대 고고학계에 커다란 충격과 놀라움을 전한 역대 최고대 문명 '홍산문화'이 발견되었다. 요하지역에서 기존의 세계 4대 문명권보다 적게는 1000년, 많게는 2000년 앞선 문명이 발견된 것이다. 이 지역은 지금까지의 역사기록을 토대로 중화민족과는 상관없는 만리장성 밖의 동이와 북적의 활동영역이다. 수 천 년 동안 야만인 취급하던 이 지역에서 중국 한족이 자랑하던 황하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산문화는 기원전 4500년까지 올라가는 문화이다.

      기원전 3500년경에 이미 초기국가 단계에 진입했다고 믿을 만한 물증들이 쏟아져 나오는 홍산문화는 실로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할 대사건이다.
홍산문화란?
      홍산(紅山)은 내몽골자치구 적봉시赤峰市의 동북방에 인접한 산의 이름으로 광물을 함유한 바위가 많아 붉은 색을 많이 띠고 있다 하여 홍산(紅山)으로 불리고 있다. 1920년대 이후 중국 내몽골자치구와 요령성의 접경지역에서 기존의 세계 4대 문명보다 무려 1~2천년이나 앞선 인류의 시원문명이 발굴되었다. 이 만리장성 밖의 문명이 이른바 '홍산문화' 일명 '요하문명' 또는 ' 발해연안문명'이다. 우하량 유적 등 홍산 지역에서 발견된 유적을 보통 협의의 홍산문화라 하고, 그 이후 내몽고자치구 동부, 중국 요령성, 하북성 경계의 연산 남북일대, 만리장성 일대에서 우하량 유적과 같은 계통의 여러 문화들이 계속 발견되었는데 이들을 통틀어 광의의 홍산문화 라고 한다. 이것은 한국에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2003년 여름, 동북공정의 속내를 드러낸 중국 ‘광명일보’의 시론(試論) ‘고구려 역사 연구의 몇 가지 문제점’을 입수 번역해, 신동아 2003년 9월호에 보도함으로써 한국의 반(反)동북공정 운동을 촉발시킨 이정훈 동아일보 당시 출판국 전문기자가 중국을 종횡무진 오가며 내용을 정리한 덕분에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되었다. 기자는「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과 「내몽고 횡단 4000km 학술 르포 中 동북공정 무너뜨릴 칼과 방패를 찾아서따라서」를 집필하여 홍산문화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노력하였다. 이에 부흥하여 사학자, 종교단체 및 뜻있는 분들에 의해 홍산문화가 일반인들에게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흙사랑문화(CLC)예술협동조합에서도 늦게 마나 ‘홍산문화’역사와 같이 하고 있는 흙을 빚어 만든 흙피리를 통하여 국민들에게 우리역사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올바른 역사관, 국가관, 가치관을 심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왜 홍산문화가 중요한가?
      랴오닝성 젠핑현의 우하량에서 무려 BC 3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적석총, 푸른 옥으로 눈알을 박고 흙으로 빚어서 구운 여신묘, 대형 원형제단을 모두 갖춘 동북아 최고 문명이 발굴되었다. 세상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이 문명은 인류의 4대 문명이라 불리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보다 1~2천 년이나 앞선 인류의 시원문명이다. 이미 5,500년 전에 종교를 중심으로 제정일치의 국가조직을 갖춘 상고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홍산문화로 인해 머지않아 한국사와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은 홍산문화를 ‘제5의 문명’, ‘신비의 왕국’으로 막연하게 규정하며 자신들의 문화로 둔갑시키고 있다.이를 위해 ‘동북공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왜 홍산문화가 중요한가?
      랴오닝성 젠핑현의 우하량에서 무려 BC 3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적석총, 푸른 옥으로 눈알을 박고 흙으로 빚어서 구운 여신묘, 대형 원형제단을 모두 갖춘 동북아 최고 문명이 발굴되었다. 세상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이 문명은 인류의 4대 문명이라 불리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보다 1~2천 년이나 앞선 인류의 시원문명이다. 이미 5,500년 전에 종교를 중심으로 제정일치의 국가조직을 갖춘 상고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홍산문화로 인해 머지않아 한국사와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은 홍산문화를 ‘제5의 문명’, ‘신비의 왕국’으로 막연하게 규정하며 자신들의 문화로 둔갑시키고 있다.이를 위해 ‘동북공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하여 고구려사만 가져가려고 하지 않는다. 고구려의 모태인 고조선부터 몽땅 가져가려는 것이 동북공정의 목표다. 이를 위해 중국은 정교한 논리를 만들었다. 중국은 한국이 ‘단군조선을 신화 속의 나라로 여긴다’는 데 착안해, 단군조선의 실재를 간단히 부인한다. 그리고 중국 고대국가인 상(商)나라 사람 기자(箕子)가 세운 기자조선에서 고조선이 시작한다고 정리한다. 이러한 기자조선을 중국 연(燕)나라 사람인 위만(衛滿)이 뒤집고 위만조선을 여는데, 이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곳에 4개 군(郡)을 설치한 이가 중국 한(漢)나라 무제다. 한 무제가 세웠다는 한4군 가운데 하나인 현도군에 고구려족이 많이 사는 ‘고구려현’이 있었다고 하는데, 고구려족 세운 나라가 바로 고구려이니, 고구려는 중국의 고대 변방국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 동북공정의 핵심 논리다.” - 신동아 2008년 (이정훈 기자)
동이족은 누구인가?
“발해연안에서 발굴된 빗살무늬토기, 홍륭와 문화에서 발굴된 옥 귀걸이 등을 분석해보면 8천 년 전부터 요서, 요동, 한반도가 하나의 문화권이었음을 보여주고 홍산문화는 중국 한족의 것과는 계통이 다름을 보여준다. 실제로 중국은 홍산문화 발굴지점이 자신들이 오랫동안 동이 땅이라 폄하하던 만리장성 이북이라는 점에 매우 당혹했다. 본래 동이의 ‘이(夷)’는 ‘깊고 단단한 뿌리’라는 의미로서 동이는 ‘동방의 뿌리’라는 숭고한 의미가 담긴 말이다. 홍산문화가 증명하듯 환국에서 발원한 배달의 동이족은 고대 동북아 문화를 창조하고 꽃피운 주체 세력이었다.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동이족은 회수와 황하유역, 산동반도에 걸치는 중국 동해안 일대, 남만주, 발해만 일대, 한반도에 걸쳐 거주하면서 고조선이라는 강대국을 세웠던 것이다. 이렇듯 동이는 큰 활을 쏘며 웅대한 역사의 기상을 펼친 동방 군자 나라를 건설한 주인공이었다. 그러다 동이가 오랑캐라는 말의 동의어가가 된 것은 화하족이 중국 역사의 주도 세력이 되면서부터이다. 특히 존화양이(尊華攘夷)를 내세운 것은 주나라 이후의 일이고, 전 중국에 걸쳐 골고루 분포되어 살던 다 같은 동이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나눠 불렀다.” - 천부경과 삼일신고 블로그 발췌

      홍산문화 발굴 이후 중국은 동이의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로 둔갑시키기 위해 다민족역사관을 세워놓고 동북공정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 홍산문화를 자신들의 역사로 포장하기 위하여 인력과 자금을 통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심각할 정도로 역사에 대해 무관심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거울이다. 영국의 처칠 수상 또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하며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정말 우리에게는 유비무한적 대처방안은 없는 것일까?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강동 6주를 획득한 ‘서희 담판’과 같은 지혜가 우리시대에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오래된 자랑스런 우리 문화를 통한 적극적 대응이다.

「윤재근은 1969년 『문화비평』이란 계간지를 창간하면서 “문화는 인간생존의 부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원동력이다. 문화는 생존의 기호품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필수품이다. 문화는 눈썹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앞을 내다보는 눈과 같다. 문화교류는 겉치레이고 그 실속은 치열한 문화전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1996년에 낸 『문화전쟁』이란 책에서도 여전히 문화 접촉은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문화는 강(强)문화가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네이버 션샤인 논술사전 발췌

      10월 3일은 우리 민족 최초 국가인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을 기념하는 개천절이다. 개천절은 민족국가의 건국을 경축하는 국가적 경축일인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개천절 하면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 쑥과 마늘을 떠올린다.그러나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을 진행하며 <단군신화>를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신화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단군신화를 테마로 한 대형 공원을 조성하고 왼손에는 쑥, 오른손에 마늘을 들고 있는 높이 18m, 무게 500t의 석조 웅녀상(熊女像)까지 세웠다. 산 전체가 ‘단군신화 공원’이나 다름없는 이곳은 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의 모형이 세워져 있어 <단군신화>가 중국의 역사로 둔갑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홍산문화를 오랫동안 연구한 우실하 항공대 교수는 “고조선의 구성원인 ‘웅녀족’이 만주 지역 토착세력이고, 만주는 현재 중국 땅이므로 한민족은 당연히 중화민족의 한 구성원이라는 억지 논리”가 펼쳐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단군신화> 의미의 중요성
      <단군신화>는 우리의 시조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밝혀주는 신화로 우리가 이 신화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오래된 우리의 시조(始祖)역사와 우리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에 이르되, 옛날 환인에게 서자庶子 한웅이 있었는데,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하였다. 아버지 한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 할만 하였다. 이에 천부인 3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삼천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오니 이가 곧 신시요 이분을 한웅천왕이라 부른다. 풍백과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을 주관하고 ․ 주명 ․ 주병 ․ 주형 ․ 주선악 등 인간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세상에 머무르면서 다스렸다.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요, 당요가 즉위한지 50년경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조선이라 처음 일컬었다.(중약)

      한웅이 곰과 범을 한 굴에 가두고 마늘과 쑥만을 먹게 하며 100일을 견디면 견디는 자를 부인으로 삼겠다고 하였으며 3,7일 만에 범은 굴 밖으로 도망치고, 곰은 여자로 환생하여 한웅과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아 조선을 세우게 되었다.

      <단군신화>는 우리의 역사 1만년을 그대로 압축해 놓은 신화이다. 이 신화에는 한인천제가 다스린 한인시대, 한웅천왕이 배달나라를 세워 다스린 한웅시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워 다스린 시대가 신화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특히 ‘곰이 여자가 되었다’는 대목에 있어서 우리나라 건국의 시조사가 들어있기에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단군신화>마저도 중국의 신화로 둔갑될 위기를 장기적으로 대처 하려면 좀 더 객관적이고 타당성 있는 근거를 제시할 필요성이 있다.
문자학으로 본 단군역사
      이를 위하여 문자학을 통하여 단군역사가 우리나라 역사임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먼저 한.중 문자학의 대가인 진태하 박사는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글자’임을 주장하며 한평생을 이 분야에 몸 바친 인물이다. 그는 중국의 문자학자 이경재가 쓴 글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무공 방면에 있어서는 제하(諸夏)가 비록 승리를 획득하였으나, 문화방면에 있어서는 동이에 동화되었다. 대저 동이東夷는 과연 어떠한 사람들인가. 곧 화목 자상하고, 무력보다는 예술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대표적 인물을 들면 순(舜)임금이다.(맹자는 순임금을 동이인이라고 말하였다) 지인(至仁),지효(至孝)하여, 남에게 천하(天下)를 양위하고, 또한 천하를 다시 남에게 양위함은 참으로 고금 중외에 다시없는 지극히 성스러움인 것이다. (중략) 우리나라(中國) 문자는 동이인이 다 창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설(契)이 널리 보급하였기 때문에 造字의 공이 契(설)에게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동토와 서토의 고문을 대략 비교하여 보면, 곧 동이가 문자의 지혜에 대해서는 서하(西夏)보다 우수하고, 동이인이 먼저 교육권을 장악하였으므로 제하(諸夏)가 모두 동이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한자의 기원과 발명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논쟁이 불붙을 조짐이다.

      이 논쟁은 원로 국어학자인 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가 “한자는 우리글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진 교수는 지난 4월 중순 한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자는 중국 문자가 아니라 우리 조상 동이(東夷)족이 만든 우리글이며 중국 학계에서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데 우리만 모른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 주장의 핵심은 동이족의 문자가 3400년 전 은나라 때 갑골문에서 발전한 문자이며 이것이 바로 한자라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진 교수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뜨거운 논쟁이 중국에 일고 있다. 이 글은 신화통신에도 실렸다. 중국 인터넷뉴스사이트 21CN은 25일 홈페이지에서 ‘중국 문화는 왜 늘 한국에 당하는가’라는 제하의 머리기사를 통해 반박하고 나섰다. 21CN은 특히 한국이 공자와 이백(李白·이태백), 서시(西施·춘추시대 말기 월나라의 미인) 등 유명인의 국적과 활자 인쇄술, 혼천의의 발명, 단오절, 중의학, 풍수와 같은 문화유산도 모자라 한자의 소유권에까지 시비를 걸고 있다고 공격했다. 한자의 발명 논쟁이 점화됐다고 할 수 있다.
한자의 기원 둘러싼 한중 학계 주요 쟁점과 입장
쟁점 진태하 교수측 중국 학계
동이족 우리 조상 고대중국의 동방민족 통칭, 중화민족에 편입
한자 발명 동이족이 갑골문을 바탕으로 만든 문자 갑골문도 이미 성숙한 중국문자, 한자발명은 과장
한자 기원 3400년전 은나라때 8000여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한자 명칭 한나라때도 한자 명칭이 없었다 한나라 전의 한자 역사 말살하는 행위
중국학계 평가 임어당, 왕옥철 등도 동이족의 한자 창조 인정 이미 작고한 인물로, 학계 대표할 수 없다
자료: 뉴데일리, 21CN
      21CN은 전문가 말을 인용, ‘동이족’이란 고대 동방민족의 통칭으로, 많은 부족이 포함돼 있다며 동이족이 한국인의 선조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자가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오랜 역사 과정을 겪었다며 동이족이 기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한자의 발명자가 동이족이라는 말은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화민족’이라는 개념도 들고 나왔다. 동이족이 이미 중화민족에 흡수됐다는 것. 21CN은 동이족이 주거했던 땅도 산둥(山東)성 등 중국의 동방지역이며 이곳은 지금은 중국 영토라고 덧붙였다.

      21CN은 또 진 교수가 ‘중국의 임어당(林語堂)과 사학자 왕옥철(王玉哲)도 중국의 문자는 모두 동이족이 창조했고 공자도 동이족의 후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두 사람이 중국학계를 대표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이 매체는 “진 교수의 주장이 오류투성이고 허점도 끝이 없다”며 “한국인이 이처럼 중국과 각종 전통문화 소유권을 놓고 다투는 까닭은 한국 문화 자체가 중화민족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계승자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비꼬았다.」세계일보 베이징=주춘렬 특파원(2011-04-26)
‘웅(熊)’의 글자에서 발견한 우리역사

      이처럼 정말 한자가 동이족과 깊은 관련이 있다면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한자 속에 동이족과 연관된 고유의 문화와 정서가 들어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궁금증에서 오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 탄생의 배경인 ‘웅녀(熊女)’라는 한자어를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웅(熊)’의 한자어는 ‘능(能)’과 ‘불(灬)’의 합쳐진 글자이다. 먼저 ‘능할 능(能)’의 글자를 자세히 보면 ‘마늘모(厶)’에 몸을 뜻하는 ‘육달월(月)’이 들어있다. 놀랍게도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厶’은 키세스 초콜렛이 아닌 분명한 ‘마늘(厶)’이다. 이뿐만 아니라 좀 더 깊게 들어가면 ‘능(能)’의 글자에는 ‘곰’과 ‘견디다’이라는 뜻이 함께 들어있음을 사전을 통해 알 수 있다.

1.능하다(能--)

2.능(能)히 할 수 있다

3.기량(技倆ㆍ伎倆)을 보이다

4.재능(才能)이 있다

5.화목하게 지내다

6.~할 수 있다

7.응당 ~해야 한다

8.능력(能力)

9.재능(才能)

10.인재(人才)

11.에너지(energy)

12.곰(곰과의 포유류)

13.견디다(=耐) (내)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곰이 마늘을 먹고 에너지(灬)를 발산(匕)하기 위해 참고 인내하며 견디는 과정’이야기가 들어있는 글자가 바로 ‘웅(熊)’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들어있는 마늘은 과연 중국산 일까? 국산일까? 당연히 우리나라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우리 마늘이야기이다. 양파를 까고 또 까도 양파가 나오는 것처럼 ‘웅(熊)’이라는 글자를 통해 한자가 분명 우리 역사와 문화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글 속에 글이 있다는 말처럼 한자는 글자를 보면 뜻이 보이는 뜻글자 이다. 또한 한자를 알면 문화가 보인다. 한자의 특성상 하나의 글자는 대개 몇몇의 다른 글자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한자의 뜻도 낱낱 글자의 원래 의미로 따져 보면 뜻을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스포츠에서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곰처럼 참고 인내하고 견디며 뛰어난 ‘재능(才能)’과 ‘능력(能力)’을 발휘 하는 데는 ‘마늘(厶)’이 들어있는 ‘능(能)’에 우리민족의 DNA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장구한 시간 동안 인류는 진정한 문자를 만드는 실험을 진행해 왔다. 우리는 항상 생각이나 느낌을 말로 표현하며 살고 있고, 이러한 사실은 고대인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은 문자를 통해 그 생각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야 했다. 보다 정교한 문자에 대한 공동체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문자는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인 기호의 발명은 현실 사물과 기호를 분리하는 계기가 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그러니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려는 문자가 말을 형상화하는 것은 당연했다. 추상화된 기호는 무한한 약속을 가능하게 하였고, 무한한 사물과 사건을 표현할 수 있는 유한한 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문자이다. 문자는 생각이나 느낌을 분명하게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 - 영화 「반지의 제왕」 中에서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지금까지 ‘능(能)’과 ‘웅(熊)’의 한자를 이렇게 풀이한 것은 흙사랑문화(CLC)예술협동조합이 처음 주장하는 것으로 이를 통하여 옛 선조들의 소중한 정신인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어받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정신’이 계승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흙피리 합주를 통한 국민음악운동이 이러한 정신의 기폭제가 되리라 생각한다.
내용 없슴
내용 없슴
내용 없슴
(홍산문화 폴더 삽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