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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C)

"너는 흙이니"

음양오행은 동양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사상으로 모든 사물은 서로 대립되는 속성을 가진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서로 조화를 이루는 동양철학을 의미합니다. 음향오행에서느느 흙(土)을 우주의 모든 중심으로 여겨 흙을 우주형성 기본의 축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과 특징이 흙을 '우주의 중심'으로 올려 놓았을까요?

흙은 크게 3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흙은 '인내의 정신' 을 가지고 있습니다. 1cm 의 흙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200년이라는 길고 지루한 시간을 참고 견뎌야 만들어 질 수 있는 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둘째, 흙은 '소통의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1g의 흙에는 수 억 마리의 미생물이 함께 공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같은 흙의 소통과 화합의 정신을 우리 또한 배워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셋째, 흙은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쁜 꽃과 맛있는 과일, 그리고 아름드리 큰 나무를 위해 흙은 자신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내어 줍니다.

흙의 특징을 살펴보니 과연 '우주의 중심' 다운 좋은 성품을 흙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흙을 본받는다면 모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효(孝)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효(孝)가 사라져 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흙의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흙의 정신’이 사라지기 때문에 효(孝)의 정신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효(孝)’의 한자어를 맑은 호숫가의 물속을 들여다보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들 자(子)위에 흙(土)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흙 친구의 장점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왜 효의 한자어에 흙이 들어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갈 것입니다. 즉, 효란 부모가 흙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하고 헌신한 부모의 마음을 자식이 아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다는 것은 경험과 동참을 뜻합니다.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사랑을 받기만 하지만 나이가 들어 부모가 되어 경험과 동참을 통하여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교(教)

교(教)의 한자어를 맑은 호숫가의 물속을 들여다보듯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교(教)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교육(教育)’과 깊은 관련이 있는 글자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교육’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교육>의 사전적 용어는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흙의 철학에서 보는 <교육>은 ‘흙의 마음을 본받아 흙처럼 이타적인 삶을 사는 방법을 기르는 과정’을 말합니다.
즉, ‘교(教)’는 <가르치다>는 뜻보다 <본받다>는 뜻이 더 잘 맞습니다.
한 가지 사실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회초리(爻)’가 들어있는 ‘교(教)’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글자입니다. 결국 이‘교(教)’의 한자어를 우리나라 사전에서는 ‘회초리로 쳐서 가르쳐 배우게 함의 뜻’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회초리 뜻으로 쓰이는 ‘효(爻)’또한 깊이 들어가면 흙처럼 본받다는 뜻이 들어 있지만 현대인들이 거기까지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는 사는 안타까운 세상입니다.

법(法)

법(法)은 어릴 때는 모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담스러워 하는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흙의 철학과 함께하는 법은 결코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법(法)의 한자어를 맑은 호숫가의 물속을 들여다보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가운 흙(土)이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흙처럼 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고 베풀며 물(氵)처럼 유유히 자신의 길을 간(去)다면 누구에게나 법은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 사고와 행동을 가진 사람은 법(法)을 매우 부담스러워합니다. 법(法)이 부담스럽다면 이제부터 흙(土)처럼 살아봅시다. 흙(土)의 철학과 함께 하는 법! 행복의 시작입니다.

사(思)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수 천 년 동안 이어져온 동양의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동양이라도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의 정서가 매우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서가 다르다는 것은 생각이 다름을 말합니다. 생각 ‘사(思)’의 한자어를 보면 흙(田)이 들어 있습니다. 동양의 수 천 년 이어져온 농경사회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밭(田)입니다. 밭은 모든 것을 해결 해 주는 장소였습니다. 이 밭을 정성껏 가꾸어야 식구들이 건강하고 행복해 질수 있기에 모든 생각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社)

'사(社)'는 인간생활에 있어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회(社會)’란 단어에 사용됩니다. 사회(社會)란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조직화된 집단이나 세계’를 말합니다. 여기에서의 '사(社)'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사회는 개인주의가 갈수록 커져가며 도덕감 결여, 인간성 상실에서 빚어진 소통의 부재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흙(土)에서 답을 찾아볼까요? 사(社)의 한자어에도 반가운 흙(土)이 들어있습니다. 흙이 뭉치고자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흙(土)처럼 옳은 일에 다함께 참여하고 흙(土)처럼 이타적인 삶을 실천 한다면 우리 사회는 곧바로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악(堊)

악(堊)과 악(惡)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뜻은 매우 크게 다릅니다. 마치 식용버섯과 독버섯처럼 ‘악(堊)’은 사람에게 매우 이롭지만 ‘악(惡)’은 사람을 위험과 곤란에 빠뜨릴 수 있는 단어입니다. 두 한자를 자세히 보면 모두 ‘버금아(亞)’가 들어 있습니다. 버금아(亞)는 다음가는 자리, 제2의 자리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버금아(亞)’밑에 흙(土)이 들어가면 ‘흰 악’즉, 거룩하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백악관(白堊館)이라는 말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버금아(亞)’밑에 마음(心)이 들어가면 ‘악할 악’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성경책에 이와 관련된 예화가 요한 계시록에 들어 있습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14:13-14)
이처럼 남과 비기려는 마음은 악한 결말을 맺지만 흙(土)과 비기려는 마음은 흰 흙(堊)처럼 고운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제부터 서로서로 흙(土)의 성품을 닮으려 노력해 봅시다.

노(老)

흙의 철학과 함께하는 마지막 한자어는 ‘노(老)’라는 단어입니다. 언어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특히 오늘날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새로운 개념이나 사물이 등장함에 따라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게 되어 새 단어가 탄생됩니다. ‘실버’라는 단어 또한 ‘노인(老人)’이라는 말을 대신하여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노인(老人)’을 늙은 사람이라는 뜻으로만 해석해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노(老)’는 익숙하다, 노련하다, 숙달하다, 대접하다, 거느리다, 신의 우두머리 등 과 같은 매우 긍정적인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흙의 철학으로 본 노인(老人)이란 ‘흙의 성품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을 말합니다. 앞으로 우리사회에서 ‘노인(老人)’이라는 말이 훨씬 가치 있고 아름다운 단어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인 한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 아프리카 속담